[양치기소년의 죽음]
완만한 경사의 언덕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풍요로웠으며,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도 고와서 마치 천국을 땅 위에 그려놓은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을에도 걱정거리는 있었습니다. 마을을 둘러싼 은은하고 잔잔한 안개 속에서 붉은 눈을 가진 포악한 늑대들이 나타나 마을의 가축을 물어가고 심지어는 사람들마저 해치는 일이 빈번했던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너무나 행복했지만,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붉은 눈의 늑대들 때문에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내가 나타나 마을을 둘러싼 안개 속 곳곳에 횃불을 세워놓자는 제안을 하였고 신기하게도 그 뒤로는 늑대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마을에 또 다른 골칫거리가 생겨났습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마을 주변의 풍요로운 초원을 따라 양들을 치던 양치기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것입니다. 그런 장난이 한 번, 두 번을 넘어 몇 번이나 진행되자 사람들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믿지 않게 되었고 양치기 소년을 욕하며 내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그 장난에 우스꽝스럽게 맞장구쳐주는 사람마저 생겨났습니다.
양치기 소년의 아버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너무나도 착하고 성실했던 아들이 그런 일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 지지 않았고 손가락질받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 때 범죄자로 살았던 자신의 과거의 악몽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끝까지 믿고 싶었습니다. 아침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실이 맞는지.. 한참을 굳어져 서 있던 아들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사람들과 다툼으로 인해 생긴 것인지 여기저기가 긁혀서 피를 흘리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조용히 연고를 내어주며 '이제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려운 걸음으로 양치기 소년이 찾아간 그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바란 건 다른 어떤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몇 마디의 말,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며 들판에서 잠드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마디 위로와 함께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피하는 친구,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어 대는 친구, 그리고 아예 만나려조차 하지 않는 친구까지, 다들 '거짓말쟁이' 친구를 밀어내려 할 뿐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말하는 이 '거짓말쟁이' 친구와 감히 함께 할 자신이 없었던 겁니다.
계절이 바뀌고 바뀌어 낙엽 위로 모두가 포근한 겨울잠에 빠지는 계절이 올 때까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첫눈이 소복소복 내려 어느새 조금씩 쌓이기 시작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포근히 내리는 눈송이를 헤치며 "늑대가 나타났다~!! 붉은 눈의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간절한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마을을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번에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늘만큼은 이 거짓말이 길게.. 또 간절하게 온 마을에 울려 퍼졌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마을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왔을 때, 마을 사람들은 온몸이 굳어버렸습니다. 지독하리만큼 무서운 눈빛의 붉은 눈을 가진 늑대 한 마리가 양치기 소년을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내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무기를 양손에 쥐고 늑대에게 달려들어 그 늑대를 내쫓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올랐습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자신들의 가축들은 늑대에 의해 잃을 뻔했고, 사람마저 다칠 뻔했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게 다 양치기 소년이 거짓말을 해대서 사람들이 늑대에 대해 둔감해졌기 때문이라며 양치기 소년을 둘러싸고 욕설을 퍼 붇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뒤 마을 사람들은 극약을 마신 채 쓰러져 있는 양치기 소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조그만 노트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노트에는 시기별로 붉은 눈의 늑대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과 시간, 그리고 늑대들을 다치지 않게 쫓아내는 방법 등이 새겨진 일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에는 '이제는 내가 없어도 될 것 같아.. 마을을 부탁해요.'라는 말도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년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무량 억겁의 외로운 터널을 늑대와의 사투로 지나왔던 것입니다. 노트를 보던 사람들은 재빨리 그것을 덮었고, 숨이 멈춘 양치기 소년의 입술 위로는 한 송이의 눈꽃이 살며시 떨어졌습니다.
소년의 아버지 눈에도, 친구들의 떨리는 손등 위에도 소년의 입술 위로 나리던 눈꽃이 빗물처럼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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